위저드리 1: 광왕의 시련장 현실도피


Wizardry: Proving Grounds of the Mad Overlord / 狂王の試練場 (APL2 1981, FC 1987)

파티명에 신경쓰면 지는겁니다

내가 어렸을 때 위저드리에 대해 들은 건 몇 가지 단편적인 정보 뿐이었다. 자기가 직접 캐릭터를 만들고 파티를 편성해서 던전을 탐험하는 1인칭 RPG이며, 그 난이도가 살인적이라는 것. 직접 해 보니 결코 틀린 말이 아니지만, 특정한 상황을 전제한다면 적당히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 탈바꿈한다.

내가 플레이한 버전은 패미컴. 그래픽면에서는 슈퍼패미컴이나 PS1용으로 1~3편 합본이 있으니 그래픽을 중시한다면 이쪽을 택하는 것도 OK. 버전에 따라 마이너 체인지가 있을 지도 모르지만, 일단 듣기로 패미컴판은 애플2 원작의 시스템을 그대로 따라오며 그래픽을 일신하고 음악을 추가한 버전이라고 한다. 그래픽은 패미컴 기준에선 좋은 편. 던전은 단조롭지만 적의 스프라이트는 제법 디테일하고, 음악은 나쁘진 않지만 계속 듣다 보면 좀 질리긴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최종 10층으로 내려가면 던전의 그래픽이 달라진다.

일단 어려움에 대해 말해보자 위저드리의 난이도를 높이는 건 이런 것들이다.

1. 처음에 시작하기 어렵다. 파티 구성은 어떻게 해야 하지? 스탯 분배는 어떻게 해야 하지? 여관은 왜 이렇게 비싸지? 이 나이란 건 뭐지? 장비는 비싼 게 좋은 거야?

2. 죽기 쉽다. 초반 1레벨 파티가 제대로 된 장비도 못 갖추고 나가다 전멸하기 쉽다. 레벨을 거의 한계치인 12~13까지 올린 뒤에도 적들은 무자비하고, 후반에 상태이상, 일격사 마법 Zilwa, 레벨 드레인까지 당하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3. 오토맵 기능이 없다. 길을 잃기 쉽다. 제대로 한다면 스스로 그래프 페이퍼에 매핑을 해 가며 진행해야 하는 데다, 게임 내에서 현재 플레이어가 향한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도 없다. (최소한 마법 Dumapic을 사용하면 좌표를 알려준다.)

4. 캐릭터가 죽으면 부활을 시켜야 하는데, 돈이 드는 건 물론이고 실패하기도 한다. 실패하면 재가 되고, 재가 되면 부활 비용이 급증하는데.. 여기서 다시 실패하면 해당 캐릭터는 영구 소멸한다. 던전을 탈출할 때 쓰는 텔레포트 마법 Malor에서 좌표를 잘못 찍거나 해서 실패하면 돌 안에 들어가서 전멸하기도 한다. 적어도 이렇게 전멸하면 성으로 자동으로 돌아온 상태가 되지만, 전투중에 전멸하기라도 하면 2군 파티를 보내 시체를 회수해야 한다. 즉 실기로 플레이한다면 2군, 3군 파티까지 만들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게임을 어떻게 할 만 하게 만드냐고? ...세이브 스테이트. 쓸데없이 혁신적이라 오토세이브 기능을 지원하기 때문에 한번 로스트한 캐릭터를 되살리는 것이 게임상 불가능하지만, 에뮬레이터 세이브 스테이트 기능을 사용하면 위의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된다. 물론 지나치면 게임 자체가 재미없어지니까, 내 경우에는 성을 떠나는 순간에만 세이브를 하고 실패할 경우 탐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식으로 플레이했다. 10층의 최종보스 워드나 격파는 도전 6회만에 성공했다.

위저드리의 파훼법을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맵은 쉽게 검색할 수 있지만, PC판과 콘솔판이 다른 곳들도 있으니 주의. 자세한 공략은 인터넷에서 (특히 영어로)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너무 자세하면 오히려 막막하기 쉬우니 최대한 요약해 보았다.

기본 플레이:

1. 편성은 여러가지 가능하지만 일례를 들자면 전사 3, 도적 1, 마법사 1, 클레릭 1의 파티를 구성한다. 능력치 보너스는 랜덤하게 결정되니 18 정도를 노리며 리셋을 반복하고, 파티 성향은 전부 으로 맞춘다. 보물상자의 트랩을 해제하는 데 필요한 도적의 성향은 중립 혹은 악 고정인데, '선'과 '악'은 함께 편성할 수 없다. (바꾸는 방법이 있지만 처음엔 일단 악으로 맞추는 게 속편하다.) 어쩌다 클레릭이 1레벨에서 회복마법 Dios를 갖고 있지 않은 채 생성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새로 만들자.

2. 경험치가 쌓여도 그냥은 레벨이 오르지 않고, 여관에서 자야 레벨업 체크가 발생한다. 비용이 많이 드니 방이 아니라 마굿간에서 재우자. HP는 회복되지 않지만 마법이 채워지니 마법으로 회복하고, 클레릭을 마굿간에서 재우는 것을 반복하면 돈을 들이지 않고 회복이 가능하다. 돈을 내서 재운다고 바로 회복되는 게 아니라 많이 내는 만큼 회복량이 달라지니 주의.

3. 보물상자를 발견했을 때 무턱대로 열면 죽는다. 대부분의 보물상자에는 트랩이 깔려 있다. 주문 Calfo를사용하거나, 도적에게 조사를 시키는 것으로 트랩의 종류를 파악한 뒤 이것을 해체하고 나서 열어야 한다. 물론 종류를 잘못 파악하거나, 해체를 실패하거나 할 때 트랩이 발동될 수도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악질적인 건 텔레포터.

 4. 시작지점에서 2~3레벨정도를 올리고 최소한의 장비를 갖춘 뒤 1층의 남동쪽에서 발견할 수 있는 머피의 유령을 잡으며 레벨을 올린다. 맷집은 좋지만 데미지가 별로 없는 적임에도 불구하고 경험치가 높고, 특정 방을 조사하면 반드시 출현하기 때문에 랜덤 인카운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머피 선생님과 함께 레벨링 특강을 받으러 자주 방문하게 될 것이다. 때로 "우호적"인 상태로 등장해 싸울 지 말지 선택이 주어지는데, 우호적인 상대와 싸우면 '선' 멤버가 랜덤하게 '악'으로, 보내주면 '악' 멤버가 랜덤하게 '선'으로 변하니 이를 조절하는 데 쓸 수도 있다.

던전공략:

다음의 아이템들을 우선 확보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맵을 참조하자.

- 청동 열쇠, 은 열쇠(1층)
- 개구리 조각상, 곰 조각상, 금 열쇠(2층)
- 블루 리본 (4층)

1층과 2층을 천천히 클리어한 뒤 3층을 제끼고 4층으로 향하는 엘레베이터로 내려간다. 4층은 둘로 분리되어 있는데, 3층의 계단을 통해 북쪽에서 내려오면 블루 리본을 얻을 수 없다. 위의 아이템들을 얻은 뒤 엘레베이터로 1층에서 4층까지 내려간 뒤 블루 리본을 확보한다. 레벨은 최소 6~7 이상을 노리자. 성의 군주인 트레버의 엘레베이터가 1~4층, 마도사 워드나의 엘레베이터가 4~9층을 연결하는 구조이며, 블루 리본을 얻으면 워드나의 엘레베이터를 쓸 수 있게 된다.

재미있게도 1층 입구에서 엘레베이터로 가는 길이나, 4층의 두 엘레베이터 사이를 이동하는 길은 전혀 복잡하지 않다. 한두번 가 보면 길을 기억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9층에서 10층 사이에는 계단이나 엘레베이터가 없지만, 9층에서 10층으로 떨어지는 일방통행 통로가 존재한다. 그것도 몇 걸음 안에. 맵을 끼거나, 길을 기억하면 1층에서 10층까지 내려가는 데는 몇 분 걸리지 않는다.

그러면 5~8층은? 스킵한다. 간신히 8층까지 내려가도 8층에서 9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포일러라면 스포일러인데, 5~8층은 존재 자체가 함정이다. 특히 8층은 더럽게 정신사나운 맵이니 주의. 물론 5~8층을 탐사하면 상점에서는 구할 수 없는 레어 장비 드랍을 노리거나, 강한 적들과 싸우면서 레벨링에 도움이 되는 등의 장점은 있다. 5~8층은 플레이는 재미있지만 공략에 필수적이진 않다. 일단 들어간다면 탈출을 위해 Malor를 습득한 뒤에 하자. Dumapic으로 현 좌표를 확인한 뒤 Malor로 목적지 0, 0, 0이 될 수 있도록 지정하면 성으로 돌아올 수 있다.

10층은 구조적으로는 전혀 복잡하지 않은 일방통행 구성이다. 일직선으로 따라가다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오는 중간보스 포인트마다 존재하는 텔레포트로 다음 지역으로 가다 보면 워드너로 이어진다. 주의점은 10층 시작지점 및 문을 열고 들어간 직후 우회전하면 성으로 바로 텔레포트한다는 점이다. 함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파티를 로스트할 위기에 빠졌다면 일단 돌아가 후일을 기할 수도 있다. 문을 통과할 때마다 생기는 강제 인카운터는 지정된 중간보스가 있는 게 아니라 10층의 일반 적들 중 랜덤으로 나오는 만큼 적을 봐 가면서 도망쳤다 다시 들어오길 반복하는 것도 좋다.



레벨에 대해서는 12~13레벨 정도를 기준으로 보면 될 거 같은데, 마법사와 클레릭이 각각의 최강 마법인 Tiltowait와 Malikto를 습득한 시점에서 도전자격이 주어진다고 보면 된다. 워드나의 모든 공격은 마법인데, 많게는 100 가까운 데미지를 입히는 게임내 최강마법인 Tiltowait를 쓰고, 함께 나오는 적들도 즉사마법이나 레벨 드레인 따위를 쓰기 때문에 마법을 봉인하는 게 중요하다. 적의 마법을 봉인하는 클레릭 2레벨 주문 Montino는 안 먹힌다고 보면 되고, 마법사 6레벨 주문 Haman이 공략의 키가 된다.

Haman은 캐스터의 레벨을 1 희생시키는 대신 신들의 도움을 빌어 랜덤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기적 주문이다. 7가지 옵션들 중에서 3가지가 랜덤으로 결정되어 선택 가능해지는데, 이 중에 적을 입다물게한다를 택하면 워드나의 주문을 영구히 봉인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7레벨 주문인 Mahaman은 효과가 더 강하지만 봉인은 Haman으로 충분. 물론 워드나의 선제공격으로 Tiltowait를 맞아 마법사가 죽어버리거나, 원하는 효과가 선택되지 않을 경우 골치아파진다.

워드나를 쓰러트렸다! 문제는 그 다음. 탈출을 해야 하는데, 워드나 구역에서 탈출할 방법이 없다. 텔레포트 주문 Malor를 쓰거나, 워드나를 쓰러트리면 자동으로 얻는 아이템인 Amulet을 사용하면 Malor가 발동된다. 10층에선 사악하게도 Dumapic까지 봉인되어 있는데다, 워드나의 방에서 나올 수 있는 통로가 없으니 주의. 워드나 인카운터 지점에서 서17, 남3, 위9를 지정하면 성 바로 앞까지 자동으로 이동되며, 엔딩을 볼 수 있다. 엔딩 이후에도 물론 계속 플레이 가능하다.



난이도 이야기로 돌아오자. 왜 이 게임은 이렇게 괴랄한 난이도로 설정되었을까. 난 위저드리가 이후의 RPG들처럼 엔딩을 보는 것 자체가 목적인 게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던전에 들어가 몬스터와 싸우며 보물을 찾으며, 갈 수 있는 데까지 갔다가 탈출해서 돌아오는 과정이 이 게임의 본질이다. 거기에는 아케이드적인 매력이 있다. 이번엔 2층을 돌파할 수 있을까? 3층을 플레이할까, 4층으로 바로 내려갈까? 최소한의 공략조건(블루 리본 획득)을 만족시키면 스테이지 셀렉션이 열리는 것과 같다. 레벨이 올라가면 처음 몇 층까지는 길만 잃지 않으면 어렵지 않지만, 5층 이후로는 아무리 레벨이 높아도 한 번의 실수나 다이스 롤로 빅엿을 먹을 수 있는 긴장감이 있다. (로스트하지 않는 한) 캐릭터는 계승되지만, 매번 던전에 내려가는 순간 뉴 게임으로 생각하고 즐기는 것이다. 그러다 충분히 준비가 되고 자신감이 들었다면 워드나에 도전하는 것이다.


노스탈지아 없이 이 게임을 요즘 한다면? 플레이어의 게임 환경에 따라서 대답이 달라진다. 거치형 콘솔로 TV앞에서 하거나, 컴퓨터 앞에 붙어서 하기는 권하기가 좀 힘들고, 휴대기기 에뮬레이터를 쓴다는 가정하에 가볍게 도전할 만 하다. 즉 다음과 같다:
 
- 시간이 약간 있을 때 머피를 괴롭힌다.
- 시간이 좀 넉넉할 때 레벨에 맞춰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템을 수집한다.
- 키 아이템 수집이나 최종보스 워드나 공략을 노릴 때는 온라인에서 맵을 검색해 펼쳐놓고 각잡고 도전한다.
- 파티 전멸이나 캐릭터 로스트 등 최악의 상황에 로드한다.

...충분히 할 만한데? ...라고 해도 머피와 함께 시간을 제법 보내야 하는 건 여전하다. 내 경우는 하루에도 몇 번씩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일이 많고, 휴대기기로 돌리며 머피를 괴롭혔더니 어느덧 레벨이 쌓였는데, 이걸 컴퓨터나 TV화면 앞에서 한다고 생각하면 엄청나게 지겨운 게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머피만 잡으면서 만랩을 찍고 워드나를 밀어버리라는 건 아니지만 (그럴 거면 이 게임을 왜 해?) 어느 정도는 레벨링을 하는 게 게임이 쾌적해진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레벨 드레인이라도 맞고 돌아온다면 말이지.

패미컴 실기를 쓰거나, 세이브 스테이트 같은 거 없이 그 환경 그대로 한다면 미친 난이도의 하드코어 게임이 되니 도전하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거기까지 하드코어하게 도전하는 건 권하기 힘들다. 당시도 아니고 지금처럼 게임이 넘쳐나는 시대라면 플레이 시간을 적당히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잖아. 2주면 될 게임을 적어도 2달간 할 각오는 필요할 것이다. 성에서 세이브 스테이트를 쓰고 실패시 로드하는 정도를 권하고 싶지만, 층마다 세이브하는 것도 취향에 따라서. 그러면 더 짧아질 수도 있다.


2편 '다이아몬드의 기사' 캐릭터 제작중
기적은 이루어진다

덧글

  • 금린어 2016/01/19 13:42 # 답글

    위저드리 4였나(PC버전)를 가장 먼저 했었는데, 모눈종이에 지도 그리다가 모눈종이 밖으로 나가버려서 테이프로 이어 붙였던 기억이 나네요. 정작 위저드리 본가는 망했는데 일본에서는 대를 이어 나오고 있는거 보면 신기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던전형 RPG 게임을 모바일로 만들어보고 싶네요.
  • yazyk 2016/01/19 15:53 #

    야리코미 요소가 많은 게 일본에서 먹혔는지도..
  • 소울오브로드 2016/01/19 14:51 # 답글

    도적의 경우 성향을 중립으로 맞추어도 얻을수 있습니다. 선파티랑 같이 다닐수 있음.
  • yazyk 2016/01/19 15:53 #

    정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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