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 어슬레티스 대운동회 현실도피



バトルアスリーテス 大運動会 (1996 SS/1998 PS)

국내판 파이팅! 대운동회. 당시에 번들이었는지 주얼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건 PC판을 플레이한 적이 있었다. 본래 콘솔용이었고, PC판에 대한 정보가 일본어 위키피디아에 없는 걸 보면 PC판은 한국판 한정인가? 우연히 대운동회 이미지를 보고 아- 그래, 예전에 이런 게임이 있었지, 하는 생각에 플레이해 보았다. PS판으로. 한국정발 PC판은 해외에서 구하기도 힘들고, 구한다고 해도 호환성 때문에 손이 가는 게 귀찮다. PC로 게임을 거의 하지 않게 된 것도 있고.

게임, 만화, 애니 등 다방면으로 전개되는 미디어 믹스 프로젝트 중에서도 충분히 초기에 속하는 물건. 최초의 게임이 96년, OVA와 TVA가 97년인 걸 생각하면 처음부터 미디어 믹스를 의도한 게 아닐까 싶다. 그때는 한국판으로만 봤기 때문에 몰랐는데, 아카리 목소리가 이렇게 앵앵대는 소리였군. 처음부터 일본판으로 접하면 괜찮은데, 한국어나 영어판을 먼저 접하고 일본어판을 들으면 하이톤에 살짝 위화감을 느낀다. 그냥 초두효과인게지.

내용은 아카리의 교관이 되어 아카리를 대학위성에 합격시키기 위해 조교훈련시키는 육성시뮬레이션. 하지만 동 장르의 다른 게임들에 비하면 목표가 단 한가지, 대학위성에 합격하느냐 마느냐로 결정나기 때문에 리플레이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다. 호감도 여부 등에 따라서도 엔딩이 달라진다고는 하는데, 어지간히 뻘짓을 하지 않는 한 굿 엔딩을 놓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요즘 이런 게임을 만든다면 누굴 육성할 지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대신 패키지를 3가지로 나눠서 발매하겠지.

96년 최초발매라는 걸 생각하면 쇼와 스타일의 끝물이다. 사실 내가 그냥 그렇게 부르는 것 뿐이지만, 90년대 초중반까지 캐릭터 게임들을 보면 학교 클럽, 직업, 출신국 등 표면적인 요소들을 중심으로 캐릭터성을 구분하는 게 대세였고, 내가 그냥 이걸 쇼와 스타일이라 부른다. 요즘처럼 성격과 외모 포인트의 속성을 배합하는 식으로 캐릭터성을 잡는 건 헤이세이 스타일. 대운동회는 쇼와 스타일, 그것도 민족/지역 네타로 점철된 스테레오타입 캐릭터들이 대부분이다. 아예 지능이 좀 낮아보이는 아프리카 출신의 야생인간 타냐, 소련 망한지 30세기가 지난 50세기에 여전히 그 분위기인 아이라, 아예 협화어를 쓰며 장사속이 밝은 린화 등, 당시엔 어린 마음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어른이 되서 보기엔 좀 불편한 구석이 있다.


이미지 출처: PSN 게임 아카이브즈

처음에는 트레이닝 메뉴가 러닝, 팔굽혀펴기, 에어로빅의 3가지 뿐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선택지가 늘어나게 된다. 수영/사이클링/육상의 3종경기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자전거가 훈련메뉴에 없는 건 어째서지. 거기에 뒤로 갈 수록 나오는 메뉴들은 에너지 소모/피로도 축적에 비해 올라가는 스탯의 종류/양의 코스파가 낮아 CG를 보기 위해 한 번 정도 선택해 볼 수는 있겠지만 결국 주로 선택하게 되는 건 몇 가지 없다. 훈련을 실행한 뒤에 스탯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증감폭이 표시되지 않기 때문에 메모를 해 가며 비교하거나, 아니면 감으로 그냥 진행하던가. 트레이닝 중에 아카리와 교관의 부부만담도 보케와 츳코미를 번갈아 가며 맡으며 유머러스하긴 하지만 패턴이 몇 개 없어 반복감을 피할 수 없다. 다만 이 대화를 보며 아카리가 좋아하는 훈련을 시키면 호감도가 빨리 올라가는 것 같으니(확실치는 않다. 호감도 자체가 히든 파라메터니까) 처음 하는 훈련엔 약간 주의를 기울이자.

다만 목표를 어느정도로 잡아야 할 지 다소 막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보건교사에게 가면 아카리의 성장 상태에 대한 코멘트를 들을 수 있는데, 이 코멘트는 지난 일주일간 성장폭에 대한 내용이지 마지막 트라이애슬론에 얼마나 준비가 잘 되어있는가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약 일주일간 ARM을 보강하기 위해 546에서 588까지 올리자 "대단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이대로 계속해줘!"가 나오는 데 비해 이미 한참 올라있던 LEG이 동기간 698에서 722으로 오르자 "잘 해왔네. 여기서 능력을 더 올리기 위해서라면 역시 달리기가 최고야!" ... 이봐. 도움이 안 됩니다.

그 외에 유연성, 밸런스, 스타일 세 가지는 숫자가 아니라 랭크로만 표시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히 얼마나 오르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고, 솔직히 철인3종경기에 이것들이 얼마나 필요한 지 자체가 의문이기도 하다. 영 뜬금없는 훈련을 시키면 아카리가 츳코미를 던진다. 자학네타인가.


이미지 출처: 단보루

내 기억이 맞다면 한국 정발된 PC판에서는 마지막에 우승해도, 아카리의 고백을 교관이 받아들이지는 않고, 아카리가 대학위성으로 가며 리본을 던지는 것으로 끝난다. 그렇군. 로켓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면서 창문을 열고 그런 걸 수백미터는 떨어져 있는 교관에게 정확히 날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면 대학위성에 갈 수 없는 것인가.

콘솔에서는... 트라이애슬론 전날 아카리가 고백을 하려다 말고, 다음날 우승을 한 뒤에 선택지가 주어진다. 아카리를 만나러 갈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

아카리를 만나러 간다를 선택하면 교관이 아카리의 고백을 받아들인다. 그동안 계속 칸자키라고 부르던 걸 드디어 '아카리'라고 부르는 교관, 두 사람이 밤의 해변에서 키스를 하려고 하는 도중... 교장이 바다속에서 튀어나와 이 년놈들이 뭐하는 지거리냐며 아카리를 실격처리시키는 것으로 게임이 종료된다. 그러면서 기록도 삭제해버리겠다! 라고 선언하고 스탭롤이 올라가는데, 솔직히 말해서 나 이 순간 무지 쫄았다. 세이브 데이터를 지워버리는 줄 알았잖아... 만나러 가지 않으면 PC판의 그 리본 엔딩이 그대로 나온다.


노스탈지아 없이 이 게임을 요즘 한다면? 추억팔이 외에는 플레이 할 이유가 없다. 쿠소게는 아니지만 이보다 나은 게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육성시뮬레이션임에도 목적이 단 한가지로 단순하기 때문에 리플레이 밸류도 없다. 1회차에서는 어지간히 뻘짓을 반복하지 않는 한 며칠에 한번 꼴로 이벤트가 터져나오기 때문에 단조로움이 덜하지만 무슨 이유에서든 2회차 돌입한다고 생각하면 괴로울 걸. CG/이벤트 회상 모드가 없는 것도 단점이라면 단점인데, 발매시기를 생각하고 그러려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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