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도연쇄살인 -오호츠크에 사라지다- 현실도피



北海道連鎖殺人 オホーツクに消ゆ (1984 PC6001/1987 FC)

포토피아 연속살인사건에 이은 호리이 유지 미스테리 3부작 중 2번째. 3부째인 "카루이자와 유괴안내"는 패미컴 릴리즈가 없기 때문에 제낄 지도 모르겠다.

시작하면 우선 눈에 띄는 건 오프닝 스크린의 추가, 주인공의 이름을 직접 입력하는 기능의 추가, 패스워드 세이브 기능 추가 및 그래픽적인 발전. 포토피아의 인물들이 오버월드 화면에서나 볼 듯한 도트 스프라이트같은 느낌이었다면 북해도의 인물들은 CG란 느낌이 든다. 80년대 만화풍으로 그려져 있다. 거기에 전작에 없었던 BGM까지 추가되어 있다. 이야,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전작을 가볍게 씹어먹는 고퀄리티 카미게를 기대하게 된다.

스토리는 도쿄에서 시작한다. 도쿄만에서 발견된 시체에 대해 조사를 하다가 그의 본적이 북해도란 걸 알게 되고, 그 주변인물들을 조사하기 위해 주인공은 북해도로 떠나게 된다.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도쿄에서의 사전조사 부분은 이런 게임이 처음인 유저들을 배려한 건지 난이도가 낮은 튜토리얼적인 느낌. 그렇지만.. 본편에 들어가면 전작보다 더 난해하다.



하나하나 예를 들자면 분량이 길어지니 딱 세가지만.

1. 이미 프롤로그 단계에서 첫 번째 희생자인 마스다가 빚을 지고 있고, 협박장을 받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면 그걸 보낸 놈들을 먼저 알아보는 게 순서 아닐까? 하지만 마스다의 아내를 찾아내고, 마스다에게 보내진 독촉장을 들이대도 그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 없다. 주인공은 마스다의 주변인물들을 조사하다 제2, 제3의 희생자를 추적하며 사건의 스케일이 커지며 방황하게 되는데, 게임의 진행이 요구하는 방향과 플레이어의 추리 사이의 간격이 크다. 피해자 수가 전작에 비해 늘어난 덕분에 진행이 더디고, 도중에 플레이어가 뭔가 추리를 했어도 플래그를 맞추고 그 파트에 다다르기 전에는 그걸 확인할 방법이 없다.

2. 그 플래그 조건에도 도저히 말이 안 되는 것들이 섞여있다. 제3 피해자인 시라키를 조사하다 보면 진행이 막히는데, 여기서 진행하기 위한 조건은 조수 슌과 블랙잭을 해서 이길 것. 이벤트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직접 블랙잭을 하기로 선택해야 한다. 뜬금없이 블랙잭을 해서 이기고 나면 슌이 "아, 그러고 보니 본부에 연락해 볼까요"라고 말하고, 이후 전화를 건다를 선택하면 다음 희생자가 등장한다. 더 지나가면 아예 패스워드를 얻고 게임을 리셋한 뒤 컨티뉴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그것도 컨티뉴한다고 바로 추가힌트가 나오는 게 아니라, 컨티뉴 이후 특정 인물에게 가면 대사가 달라지는 것. DQ2에서도 비슷한 게 있었지만 이쪽이 훨씬 알기 힘들다.

3. 장소와 등장인물의 수가 많아졌다. 볼륨이 커졌다는 점 자체가 나쁜 건 아닌데, A → B
→ C 식으로 A에서 C로 가기 위해 반드시 B를 거쳐야 하는 등 매핑을 하지 않으면 돌아다니다가 햇갈리기 쉽고,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커맨드를 걸어야 다음 플래그가 세워질 지 모르는 상태에서 있는 대로 다 해보기에 그만큼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피해자가 머무르던 여관의 위치를 알기 위해 관광지의 사진사에게 라이터를 빌려야 한다는 걸 무슨 수로 추리할 수 있겠어? 포토피아의 진행이 그래도 합리적인 추리요소가 강했던 데 비해 이 게임은 완전히 찍어맞추기다.

이쯤 되면 정상적인 플레이는 무리다. 포토피아에 비해 돋보기로 감춰진 힌트를 찾아내야 하는 요소는 확실히 줄었지만, 미스테리 어드벤쳐 게임의 기본인 커맨드에 따른 플래그가 이래서야 공략정보가 필수가 된다. 호리이씨, 포토피아가 훨씬 나았어요. 게임이 볼륨을 증가시킨 건 좋은데, 그에 맞춰 힌트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으면 결국 다 때려맞춰봐야 하는 경우의 수가 늘어날 뿐이잖아.



후반으로 들어가면 포토피아에서처럼 1인칭 던전탐사가 재등장한다. 그러나 십자키를 이동해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던 전작과 달리 앞으로 이동하라/왼쪽으로 꺾어라/오른쪽으로 꺾어라 3가지 커맨드를 계속 선택해야 하는 형태. 통상시 장소이동과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 이래서야 조작성도 나쁘고 1편 이상으로 햇갈린다. 문제의 탄광에 들어갈 때 자동으로 패스워드를 출력해 주는데, 이걸 보면 자기들도 이 부분이 귀문인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시나리오적으로는 하나의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추리물의 요소가 강했던 전작에 비해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한 활극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 슌은 민첩하게 피했다! 회심의 일격! 야쿠자를 쓰러트렸다! 같은 DQ네타가 들어가 있는 것도 뭐, 웃긴 했지만 그건 재미있어서 웃었다기보다 실소에 가깝다. 물론 유머는 받아들이는 사람 나름이다. 중간에 주인공과 조수 슌스케가 번갈아가며 변태발언 및 변태행위를 저지른다던가, 탄광에 들어가기 전에 회중전등을 사러 들어가는 전자상에서 뜬금없이 TV와 패미컴을 살 수 있다던지 같은 소소한 개그요소들이 들어가 있는 것도 플레이어의 그날 기분에 따라서는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내가 5시간 이상을 허비한 뒤 백기를 들고 공략을 보며 선택지를 그냥 찍어가던 중에 그걸 유쾌하게 받아들일 기분이 들지 않았을 뿐일 지도 모른다.

다만, 이 게임 최대의 문제는 따로 있다. 위에서 나열한 다른 문제들 이상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시나리오 그 자체다. 이 게임은 미스테리를 표방하고 있지만 이 돌아이 주인공들은 스스로 추리해 내는 게 없고, 사건의 내막을 밝혀내는 플롯은 액션 없는 액션영화 방식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전작인 포토피아는 밀실살인으로 시작하고,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를 확인해서 용의선상에서 제한 뒤 마지막에 범인이 사용한 트릭까지 자백하게 하는 추리 미스테리의 정석을 어쨌건 따르고 있는 데 비해, 북해도의 스토리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플레이어는 무작정 헤메고 다니다가 우연히 범인의 주변인물을 만나고, 우연히 어떤 타이밍에 그 주변인물이 다음 범행의 대상이 되지만 어째서인지 다른 희생자는 죽였지만 이 인물만은 납치로 끝난 덕분에 주인공에게 구출되고, 구출된 이 인물은 그제서야 경찰에게 자신이 위협받고 있었으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털어놓고, 마지막에 칼든 야쿠자 조직과 17대1로 맞장떠 전멸시키고 체포하는 스토리다. 조력자의 힘으로 모든 전모가 드러나는 게임. 이건 미스테리가 아니다.


비기: 온천에서 메구미의 배스타올을 가져오라고 명령하고 2-3분 기다린다.

이글루스 운영자님 짜르지 말아주세요 이거 야겜 아니예요




노스탈지아 없이 이 게임을 요즘 한다면? 권할 수 없다. 잘 만든 게임의 속편을 만들면서 욕심을 부리고 스케일을 크게 벌렸다가 끝마무리를 깔끔하게 짓지 못했다는 점에서 드래곤퀘스트 2와 비슷한 감상이 든다. 양덕들도 이건 영패를 안 만드는 게 이유가 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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