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로 무라마사 현실도피



朧村正 / Muramasa Rebirth (2009 Wii/2012 PSV)


일본 PSN 3월 PS+ 배포작. 사실 이 게임은 정가 주고 살까 고민하던 게임들 중 하나였는데, 3월 PS+에 등록된 걸 보고 결재했다. 플레이 기종은 PS비타.

일단 이 게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무엇보다도 그래픽. 스프라이트의 움직임은 물론이고, 배경이 매우, 매우 디테일하며 아름답다. 특히 무사시나 교토 일대의 시가지 배경이나 보랏빛으로 흐드러지는 사쿠라는 잠시 게임을 멈추고 천천히 감상하고 싶을 정도. 시각적인 만족도로는 다른 2D는 물론이고 어지간한 3D 그래픽보다 훨씬 높다. 모모히메의 점프/낙하 애니메이션은 패미컴 게임 카게의 전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떨어질 때 포즈가 비슷하고, 캐릭터 스프라이트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큰 나무들의 숲에서 그런 인상을 받는다. 오마쥬?

사이드 요소로 체력과 생기를 회복시키기 위해 음식을 사먹거나 요리를 해먹을 수 있는데, 배고플 때 하다 보면 위장에 테러를 당하게 된다. 접시에 담긴 예쁜 요리 그림을 보여주고, 그걸 주인공이 먹으면서 조금씩 줄어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게 스시라면 간장에 찍어먹는 애니메이션까지.. 액션 게임에서 먹방을 보게 될 줄이야. 그나마 입에 들어가는 것까지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음식이 줄어드는 모습만 보여주니 망정이지. 게임의 비쥬얼적인 만족도에 있어서는 최고급. 2009년 게임이지만 잘 그린 2D는 시간이 지나도 낡아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거기까지.


제작사가 공표한 이 게임의 장르명은 絢爛絵巻和風アクションRPG. 적당히 옮기면 "현란한 그림 두루마리 일본풍 액션 RPG"인데, 다른 부분은 납득이 가지만 나는 이 게임이 도저히 RPG로 보이지 않는다. 횡스크롤 액션게임에 아이템 인벤토리와 레벨 시스템만 때려박으면 RPG가 되나? 그럼 악마성도 RPG야?

제작사의 주장을 무시하고 게임플레이만 놓고 정의하면 오보로 무라마사는 약간의 플랫포밍 요소가 들어간 사이드스크롤 브롤러, 액션어드벤쳐라곤 할 수 있겠지만 액션RPG라고는 부를 수 없다. NPC와의 대화는 1. 완전히 쓸모없고 시간낭비이거나 2. 대화를 하지 않으면 다음 화면으로 넘어갈 수 없어서 강제로 해야 하는 두 가지 종류 뿐. 예를 들어 보스전을 비롯한 주요 씬에서는 우선 적을 포함한 NPC들과 대화를 하나하나 따로 선택해서 해야 하고, 그러고 나면 다시 추가대화를 본 후 싸우게 되는데 별 내용도 없는 잡몹과의 대화도 강제로 선택해서 보지 않으면 다음 씬으로 넘어갈 수 없다. 대체 어떤 머저리가 이걸 고안한 거지? 그냥 대화 컷씬 파트에 전부 포함시켜도 되지 않아? 별 내용도 없는 대사를 보기 위해 NPC를 하나하나 선택하는 게 귀찮은 건 둘째치고, 어색하다.

RPG를 RPG로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뭘까. 레벨? 설마. 그럼 칸코레나 CoD도 RPG게? RPG가 뭐냐는 이야기는 괜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정의가 될 수 밖에 없고, 여기서 이것이 RPG다! 라는 정의를 내릴 생각은 없지만 아무리 단선적인 RPG라도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꼽자면 탐사와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게임 내 월드를 탐사하며, 다음 진행에 대한 힌트를 얻은 뒤 이를 통해 게임을 전진시키는 것이다. 그 탐사가 마을의 NPC와 대화를 하는 식이든, 던전을 헤메며 힌트를 발견하는 식이든 말이지. 여기서 둘 중 하나가 빠지면 택틱스, 퍼즐, 액션, 어드벤쳐 등 다른 장르로 분류된다.



오보로 무라마사는 성장은 있지만 탐사가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게임 내 어느 순간에서든 미니맵을 통해 다음 목적지를 지시해 주는 만큼 고구마나 복숭아같은 맵상의 숨겨진 아이템이라도 샅샅이 뒤져내려고 할 게 아닌 이상 탐사의 의미가 없다. 게임 내의 각 지역들은 십수개의 작은 사이드스크롤 스테이지로 분리되어 있고, 각 스테이지 끝에 다다르면 다음으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맵의 배경이 계속 재활용되기 때문에 미니맵과 목적지 지시가 없으면 길을 잃기 쉽고, 이렇게 다음 장소를 알려주는 게 길을 잃고 뺑이치면서 헤메게 만드는 것보다는 백번 낫지만 덕분에 RPG로서의 탐사 요소는 제로가 된 것. 월드를 탐사한다기보다 그냥 다음 판으로 넘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 스토리는? 알 게 뭐야. 이 게임의 스토리는 시놉시스만 놓고 보면 충분히 괜찮은 편이지만 게임 내에서 전달이 잘 되지 않는다. 시놉시스만 보면 이건 20시간 걸리는 RPG로 만들었어야 하는 내용이지, 5시간짜리 브롤러에 끼워넣기에는 텍스트의 분량이 부족하다. 별로 길지도 않은 컷씬들 안에 복잡한 스토리를 어거지로 끼워넣으려고 무리한 덕분에 잘라내고 쳐내서 최소한의 뼈대만 전달하느라 처음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몇 번씩 읽어야 했다. (의고체가 문제가 아니다.) 이럴 바에는 별로 도움되지 않는 잡몹들의 대사를 쳐내고, 주요 등장인물들의 대사들만 남긴 뒤 캐릭터 디벨롭먼트에 쓰는 게 나았을 것 같다.

1회차를 클리어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모모히메, 키스케 루트 각각 5~6시간 정도. 1회차의 엔딩은 아무래도 화장실에서 안 닦고 나온 듯한 찝찝함이 남는데, 두 루트를 모두 클리어한 뒤 2회차에 들어가 각 루트를 클리어하면 주는 검인 무명옥의 서(無銘玉ノ緒)와 츠키오토시(憑き落とし)를 장비한 채로 최종장을 다시 클리어하면 뜬금없이 다른 주인공으로 최종보스가 바뀐다. 모모히메라면 키스케, 키스케라면 모모히메와 싸우게 되는 것. (네타바레라면 네타바레지만 워낙 클리셰라 굳이 가릴 마음도 안 든다.) 2회차라고 해도 처음부터 다 새로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최종장만 새로 클리어하면 되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건 없다.

다만 진엔딩이라고 할까, 3회차를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노가다가 많이 필요하다. 2회차 클리어시 레벨 45남짓에서 클리어했는데, 3회차의 엔딩을 위한 조건은 이 게임의 최강검인 오보로무라마사(朧村正)를 장비한 채로 클리어하는 것. 이 오보로무라마사를 장비하기 위해 필요한 레벨의 조건이 90대 이상이기 때문에 정말 어지간히 이 게임을 좋아하거나, 플래티넘 트로피에 집착하는 성격이 아니라면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물론 이쯤 오면 그 동안 들어갈 수 없었던 흰색 결계들을 부술 수 있게 되며 자코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동굴이나, 상대편 시나리오의 보스들에 다른 캐릭터로 도전한다던가 하는 요소들을 즐길 수 있게 되지만...



그렇다면 액션게임으로서는 어떨까. 역시 미묘하다. 필드상에서 랜덤 인카운터로 등장하는 적들은 그저 □버튼을 연타하면 끝나는 연타 게임이고, 그나마 보스전에 들어가면 약간 머리를 써서 공략을 해야 하는 수준이지만 모든 보스들이 그런 것도 아니다. 모모히메 시나리오의 최종보스인 부동명왕은 독특한 기믹이 있어 공략하는 재미가 있지만, 키스케 시나리오의 최종보스인 도쿠가와는 그냥 HP가 많은 샌드백에 불과하다. 특히 키스케 루트의 보스들이 샌드백 비율이 높다.

한 번에 검을 3개까지 장비할 수 있고, 부러지거나 하면 교체해 사용할 수 있다. 각 검마다 오의라 불리는 특수공격이 있긴 하지만 결국 하다 보면 가장 공격력 수치가 높은 대로 3개를 장비하게 되지 않을까? 검의 종류에 따라 연타 속도가 빠른 검이 있는가 하면 대태도같이 묵직한 걸 다룰 때는 연타가 느려지는데, 빠르게 연타가 가능한 검으로는 콤보가 늘어나는 재미라도 있지만 대태도를 쓰다 보면 타격감, 손맛이 크게 떨어진다. 육중한 무기를 다룰 때는 느린 대신 그 한방 한방이 크게 먹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그 타격감적인 측면이 아쉽다.

공격과 가드만 반복해주면 되는 만큼 단조롭다는 것도 피할 수 없다. 난이도 무쌍/수라 중 수라 모드에선 가드의 중요성이 더 강해지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덜하지만, 대신 레벨 노가다와 회복 아이템을 잔뜩 싸들고 다니는 것으로 커버되는 것도 사실. 무쌍 모드에선 굳이 가드를 의식할 필요조차 없이 □만 누르면 된다. 후반으로 가면서, 특히 모모히메 루트에선 다소간 플랫포밍이 필요한 경우도 생기지만 그 정도. 즉 단조롭다. 특히 내가 비타를 내려놓게 만든 건 2회차. 진정한 오보로류를 가르자며 모모히메와 키스케의 대결이 이뤄지는데, 그냥 몰아놓고 □연타로 패다 보면 알아서 끝난다. 분명 2회차 최종보스전이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지루하지.

액션게임으로서 만족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뭘지 플레이를 하면서 10시간동안 고민해 봤지만, 딱히 눈에 띄는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같은 건 없다. 그리고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 게임은 쿠소게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나쁜 게임은 사실 아니다. 다만...

파이널 파이트같은 게임과 비교하면 캐릭터가 너무 작아서 액션에 볼륨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상하 스크롤이 중요하고 점프해가며 공중전을 벌여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 닌자용검전같은 플랫포머냐면 그것도 아니다. 버튼 배치가 (PSV 기준) □ 공격, △ 무기 교체, X 점프, ○ 특수공격으로 게임 내내 □만 누르는 버튼매셔가 되며 단조롭게 되기 쉽고, 강공/약공 구분이나 최소한의 커맨드 요소도 없다. 그렇다고 무쌍류처럼 자코를 마구 쓸어버리는 말초적인 재미가 있냐면 그것도 미묘한게 대부분의 적들이 맷집이 있어서 여러번 쳐야 한다. 특수공격은 패턴은 다양한데 그게 딱히 압도적으로 강해서 몰렸을 때 슈팅게임의 폭탄처럼 쓸 수 있냐면 그것도 아니다. 결국 이런저런 요소는 많은데 그게 전부 80%정도, 어느 한 가지 탁월하게 "이것이 이 게임의 매력이다!" 라고 할 만한 게 없다. 그래픽 빼고.


신나게 까대긴 했지만 쿠소게라고 부를 만한 게임은 결코 아니고, 그냥 충분히 평작 이상은 된다고 생각한다. 눈에 띄는 뻘짓이나 망가진 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만으로도 일단 쿠소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강권할 만한 명작이냐면 그것도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내 플레이 환경의 문제였을 수도 있는데, PS+는 한달 기한의 렌탈이라 주말에 좀 몰아서 했고, 몰아서 했기 때문에 더 단조롭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덧글

  • WeissBlut 2016/03/22 09:18 # 답글

    오보로 무라마사는 벨트스크롤이 아니라 그냥 횡스크롤이지 말입니다. Y축이 없으니까요.
  • yazyk 2016/03/22 16:24 #

    지적 감사합니다. Beat 'em up의 대응어를 찾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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