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4 더 골든 현실도피



Persona 4: The Golden (2012)

카미게에 무한히 가까운 쿠소게 혹은 쿠소게의 탈을 쓴 카미게. 사실 플레이 자체는 꽤 전에 완료했지만, 도중에 계속 느낀 답답함과 빡침이 다소 가라앉은 뒤 차분하게 쓸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일단 나는 여신전쟁이나 페르소나 기존작을 하나도 플레이하지 않은, P4G로 시리즈에 입문한 시점에서 쓰여졌으며, 플레이 버전은 EU판 영문번역/더빙. 난이도는 노멀, 공략정보는 보지 않고 자력으로 진행했다. 현대물 RPG라는 것만 알고 시작했다.

턴방식 전투 던전크롤 RPG, 드래곤 퀘스트 몬스터즈를 떠올리게 하는 페르소나 합성, 도키메키 메모리얼을 연상시키는 커뮤니티 관리 시스템. 좋게 평가하자면 종합선물세트같은 게임이지만...

I feel like I just played a bunch of mediocre games,
rather than one great game.


그래, 온갖 게임 장르의 요소를 혼합해 넣은 시도 자체는 대담하고, 도전 자체를 평가한다면 만점을 주어도 부족함이 없는 게임이다. 이게 기술적 한계를 등에 진 레트로 게임이었다면 그 자체만으로 고평가를 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2010년대 게임인 이상 평가의 기준이 그만큼 높아지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부터 게임 시작이다

첫인상이 몹시 나쁘다. 시작이 더디기 때문이다. 영상과 대화, 최소한의 이동과 또 대화, 튜토리얼인 섀도우 요스케와의 전투는 빼버리고, 무슨놈의 게임이 오프닝만 2시간 넘게 이어지며 지금 내가 뭘 플레이하고 있는 건지 의심이 갔다. 이거 RPG 맞지? 드디어 유키코 캐슬 1층에 다다르자 이제야 시작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 배경 설명을 이해시키기 위해 어느정도의 컷씬이나 대화는 물론 필요하지. 하지만 너무 길어. 아나운서 살해사건에 대한 뉴스보도를 몇 번이나 봐야 되는 거야 대체? 중요하단 거 알았으니까 좀 작작 해주지 않겠어? 이쯤 되면 RPG의 도입부라기보다 비쥬얼노블 공통루트를 플레이하는 것 같다. 알았으니 일단 게임을 시작하게 해 달라고.

자, 던전이 열렸다. 일기예보를 참조하며 안개가 뜨기 전까지 타임 리미트가 있고, 그 안에 피해자를 구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고, 기한은 약 2주 정도...이지만, 게임 내내 던전이 개방되기부터 공략 완료될때까지는 게임 내 시간으로 2-3일이면 충분하다. 최초 던전 보스인 유키코나, 제6던전의 나마타메는 게임 내 시간으로 2-3일정도 걸렸지만 그 사이의 칸지, 리세/테디, 미츠오, 나오토 등은 던전에 들어간 당일 구출에 성공했다. 도중의 몹이나 보스에게 털렸다고 해도 그 층 시작지점부터 몇 번이든 재시작할 수 있는 데다, 보스들은 강력하긴 하지만 공격해 오는 패턴을 읽기 시작하면 4~5회 정도의 시행회수로 클리어 가능했다. 레벨이 더 필요하다 싶으면 공략 완료한 던전으로 돌아가 돈, 아이템, 경험치를 쓸고 파티를 강화시켜 돌아오면 된다.



그렇게 유키코를 구했다. 그리고 그 순간 게임이 정지된다. 게임의 이벤트는 정해진 날짜에 발생하는 식이기 때문에 기한을 많이 남겨둔 상태에서 던전을 격파하면 피해자가 회복될때까지(=남은 기한을 전부 소모할때까지) 강제로 기다려야 한다. 무슨 짓거리야 지금? 그 사이에 할 수 있는 건 커뮤니티 관리. 솔직히 말해서, 무슨 90년대의 만들다 만 갸루게의 베타 버전을 플레이하는 기분이다. 주인공의 능력치를 올리고(전투에 쓰이는 능력치와는 별개의 이중 스탯 시스템이다), 머리 위에 느낌표 붙은 동료나 NPC를 찾으러 맵을 무작정 돌아다니고, 알바를 하고, 부활동에 가입하고... 이거 RPG 아니었어? 어드벤쳐 요소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게 재미없다는 게 문제다.

여기서 좀 더 자세히 첨언하자면, 페이스 조절이 문제다. 오늘 외출할때까지 2시간 정도 있으니까, 그 사이 페르소나 좀 할까.. 하고 시작했다가, 2시간 내내 NPC만 쫓아다니고 본편과는 아무 관계없는 갸루게 이벤트나 보면서 다음, 다음, 다음 버튼을 누르다가 2시간이 지나버리고 나면 게임을 했다는 인상이 들지 않는다. 학교 캠핑, 여름휴가, 수학여행, 문화제 이런 이벤트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일단 짜증난다.

이 이벤트들은 그대로 놓고 보면 사실 잘 써졌고, 유머러스하고, 캐릭터 개성도 잘 살려주고 있다. 하지만 이건 게임이다. 이 게임의 본래 목적은 뭐야? "이나바의 연쇄살인/실종사건을 해결" 하는 게 목적 아냐? 일상씬이나 주변인물들의 개인사정같은 것들이 계속 끼어들면서 본래 목적에서 탈선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게 왜 이 게임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가를 묻고 싶다. 단체합숙에서 치에와 유키코가 독요리를 만드는 이벤트가, 본래 게임의 목적인 사건해결과 무슨 관계가 있지? 역으로 이 게임이 단지 재패니즈 하이스쿨 시뮬레이터 2012였다면 던전RPG 요소는 왜 들어가야 하는 거지? 페이스 조절을 위해 쉬어가는 씬이 필요한 건 맞는데, 그게 길고, 늘어진다. 텃밭 관리나 낚시같은 게 정말 필요해?

커뮤니티 시스템(영문판에서는 소셜 링크) 역시 원하는 캐릭터가 언제 어디에 출몰하는지 매번 메모해나가면서 공략하던가, 그냥 매번 이나바를 뺑뺑이 돌며 누군가가 밖에서 서성이고 다니기를 바라던가 둘 중 하나다. 이거 필요해? 니들 핸드폰 없어? 일단 이 커뮤니티가 기본적으로 우정인 이상 남녀 모두 해당되게 만든 건 좋은데, 복수 여캐를 상대로 연인관계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은 이상하지 않아? 만약에 MAX를 찍을 수 있는 상대는 오직 1명 뿐이라는 식으로 제약을 걸었거나, 양다리를 걸치려고 할 때 패널티가 들어갔다거나 했다면 이 부분도 좀 게임다워졌을 지 모르겠다만, 유저의 행동에 보상과 리스크가 함께 따라주지 않는 P4G의 커뮤니티 시스템은 단순히 노가다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만약 유키코 MAX 상태에서 리세에게 일정 이상 집적대면 유키코가 빡쳐서 섀도우 각성하고 자칫하면 Nice boat. 엔딩으로 간다던가, 나오토에게 일정 이상 집적대면 칸지가 파티에서 이탈해버린다던가, 뭐 여러가지 있을 수 있잖아? 그런데 이 게임의 등장인물들은 주인공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와 충성으로 무장한 예스맨들이기 때문에, 내적 갈등의 극복이라는 테마를 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면에 따라서는 정말 평면적인 캐릭터로 비춰지기까지 한다. (이 문제는 스핀오프인 댄싱 올 나이트에서 더 악화된다.)

전투에 데리고 나갈 주요 파티원들을 커뮤니티 MAX로 만드는 과정이 끝나면(내 경우는 요스케/치에/유키코 파티로 엔드게임까지 계속 진행했다) 나머지 캐릭터들의 커뮤니티는? I don't fucking care. 왜 신경써야 하지? (랭크 MAX가 되는 순간 뭔가 최상위 페르소나가 개방된다는 건 한참 나중에 알았고, 그게 개방된 다음에도 그걸 어떻게 조합해서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면 그림의 떡이지.) 그저 뭔가 이벤트를 발생시키기 위해 머리통 위에 느낌표 띄운 NPC를 무작정 찾아 헤메며 꾸역꾸역 커뮤니티 랭크를 올리는 부분은 긴장감도, 게임성도 없다. 물론 전 커뮤니티 맥스를 노린다면 시간제한이 빡셀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야리코미의 영역이고, 한마디로 게임으로서 지루하다.




어드벤쳐 파트에 대한 불만은 여기까지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P4G에서 손을 떼기 힘들었던 건 던전 공략이 그만큼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던전의 (인테리어가 아니라) 구조는 다소 단순하지만 오히려 귀찮은 기믹이 적고 직관적인데다, 전투의 연출도 화려하고 밸런싱 조절도 완벽하다. 턴제 메뉴전투로서 이보다 잘 만든 게임은 찾기 힘들다.

물리 + 불/얼음/바람/전기 + 빛/어둠의 7가지 속성에 따른 약점은 적들에게 사용할 수도 있지만 이쪽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새로운 적이 등장하면 그 약점을 파악하며 공략법을 궁리해야 하며, 처음에 만났을 때 파티를 전멸시킨 강적들의 파훼법을 발견해 관광시켜버리는 과정은 매우 즐겁다. 보스들은 HP가 떨어짐에 따라 공격 패턴을 바꾸기 때문에 몇 번인가 시도할 필요가 있겠지만 해답이 존재하는 퍼즐이다. 열쇠를 찾아라, 아이템 A를 장소 B로 가져가라는 식의 너절한 기믹(이걸 왜 퍼즐이라 부르는지?)들로 도배된 다른 많은 RPG 던전들에 비해 훨씬 낫다. ...물론 P4G에서도 열쇠를 찾아야 하는 파트가 없는 건 아니지만(나오토 이 악물어라) 말이지.

난 대부분 RPG에서의 던전들을 싫어한다. MOTHER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던전의 진행이 아니라 이벤트 발생으로 스토리 진행을 체감하는 구조에서, 장소 A와 장소 B 사이를 가로막을 뿐인 던전은 다음 스토리로 가기 위한 장애물일 뿐이다. P4G에서는 메인 스토리가 각 던전별로 진행되기 때문에 각 던전에 도전할 동기부여도 강력하다. 자코들은 팔레트 스왑이 반복되긴 하지만 각 던전들은 반복되는 요소도 없이 전부 개성적이고, 자기만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하수도나 동굴은 지겹잖아?) 덕분에 던전이 열리자마자 좋아라 달려들고 어드벤쳐 파트가 질질 끄는 꼴을 보며 괴로워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지만. Why couldn't this be the whole game?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기준. P4G를 캐릭터 게임으로서 플레이하기로 한다면 나와 반대로 이 던전이 플레이의 발목을 잡는 요소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보스들은 그 디자인도 상징적이고 멋지지만, 게임적으로도 자기가 가진 모든 아이템과 페르소나, 스킬들을 전부 동원하는 총력전을 펼쳐야 간신히 잡을 수 있을 정도이 아슬아슬한 난이도로 설정되어 있는데다 패턴을 계속 바꾸기 때문에 마지막 격파되는 순간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섀도우 나오토 제외. 나오토, 아구창 대라.) 덕분에 적어도 노멀 난이도 및 그 이상에서는 각잡고 공략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어드벤쳐 파트를 메인으로 간주하며 이 게임을 캐릭터 게임으로 즐기는 유저들에게는 다소 버거울 지도 모르겠다. (그 대신 이지모드가 있지만.)

이 던전크롤 파트와 어드벤쳐 파트가 각각 제법 길다는 것도 문제다. 물론 던전을 몰아서 진행하는 게 아니라 게임 내 시간을 충분히 들이고, 어드벤쳐 파트를 중간중간 진행하며 느긋하게 공략하는 걸로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공략정보 없이 진행한다면 타임 리미트가 언제인지 알기 힘들다. "며칠 안에 공략해라!"가 아니라 "다음 안개가 깔리기 전까지 공략해라!"인데, 일기예보를 봐도 비, 구름, 맑음으로 알려주지 안개가 오는 게 정확히 언제인지 알 수 없으니까 서두르게 된다. 결과적으로 플레이어의 리얼 플레이 시간을 기준으로, 한 세션에 2~3시간 정도 플레이한다고 하면 어느 날은 던전만 돌다 끝나고(이예이), 어느 날은 어드벤쳐만 하다 끝나는 등(니미럴) 두 파트 사이의 페이싱 조절이 아쉽다. 결과적으로 두 파트가 따로 논다는 인상을 받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않나? 어느 쪽을 선호하던간에, 다른 파트를 고역으로 느끼는 건 나 뿐이 아닐 것이다. (두 파트 모두 자기 취향에 직격이라면 축하한다.)


페르소나 등록률 26%. 이게 12월 중순의 세이브 파일이다(...)

페르소나 시스템. 주인공의 동료들은 하나의 페르소나를 갖고 계속 사용하지만 주인공은 최대 12개까지의 다른 페르소나를 사용하며 전투중에 적절히 사용할 수 있다. 마치 조커처럼. 페르소나의 능력치와 스킬이 그대로 전투시 반영되는 걸 생각하면 게임 내에 존재하는 모든 스킬을 쓸 수 있는 사기캐인 셈이고, 그 페르소나들을 합체시켜 더 강한 페르소나로 만들 수도 있...는데, 합체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어차피 조금 진행하다 보면 결국 중요한 건 사소한 레벨 몇 차이, 스테이터스 포인트 몇 차이가 아니라 어떤 스킬과 내성을 갖고 있는가라는 걸 깨닫게 되니까.

벨벳 룸으로 들어가 페르소나 합체를 통해 더욱 강력한 페르소나를 만들 수 있다고는 하지만, 합체시 보여주는 초기 레벨/스탯/스킬만 가지고는 이게 기존 페르소나를 대체할 가치가 있는지 여부를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최강의 페르소나들을 만들어 내는 테크트리가 있을 것이고, 내가 합성화면에서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치워버린 페르소나들 중에 사기적인 스킬을 나중에 습득하는 놈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며, 숙련자들이 보면 뭐 이런 저질스런 구성으로 용케도 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다만 난 이걸 하나하나 다 시도해 보면서 삽질할 마음이 들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공략정보를 뒤지면서 플레이하는 것도 성격에 안 맞기 때문에 깔끔히 무시했다. 게임 중 사용한 페르소나의 대부분은 던전에서 그때그때 동료로 입수해 가며 현지조달한 것들로, 최후반까지 10여체의 페르소나를 끊임없이 교체해가며 싸워댔다. 나중에 P4를 플레이한 다른 유저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이 페르소나 합성을 하면서 고급 페르소나를 쓰기 시작하면 그 10개가 결국 몇 개로 줄어든다고 하는데, 이것저것 메모해가면서 자력으로 탐색하는 것도 가능은 하겠고, 그렇게 했다면 좀 더 손쉽게 공략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후반부에 들어가 다양한 속성의 공격을 해대는 보스전에서는 주인공이 어떤 페르소나를 꺼낸 상태에서 턴을 종료하는가에 따라 일격사를 당할 수도 있다 보니 너절한 페르소나 다수를 운용하는 나같은 짓거리는 권하기 힘들다. 난이도 하드 이상에서는 아마 페르소나 테크를 제대로 타지 않으면 진행이 안될 지도 모르겠다만, 노멀까지는 아슬아슬하게나마 가능했다. 대부분의 보스에 4, 5회 이상 재도전해가며 싸우긴 했지만.



이 커뮤니티와 페르소나 합체 시스템이 환상의 시너지를 이루는 게 마가렛 커뮤니티. 서브퀘스트를 받으며 해결하는 것으로 커뮤니티 랭크가 올라가는 것 같은데, 이쪽은 커뮤니티 랭크 1에서 포기했다. 왜? 처음으로 받은 퀘스트는 스킬 '스쿠카쟈'를 배운 페르소나 '잇폰다타라'를 가져오라는 것. 잇폰다타라는 던전에서 쉽게 입수할 수 있는 만큼 돌다 보면 나오지만, 스쿠카쟈를 처음부터 갖고 있지는 않다. 레벨이 오르면 습득하겠지, 라고 안이하게 생각한 나는 오직 이 서브퀘스트 해결을 위해서 잇폰다타라의 레벨을 올렸는데, 몇 레벨인가를 올리다 보니 더 이상 습득하는 스킬이 없다. 도중에 드랍으로 스킬카드를 입수할 수 있을까도 기대해 보았지만 스쿠카쟈 스킬 카드는 단 한 번도 드랍되지 않았고, 11월 중반에 결국 포기하고 잇폰다타라를 해방시켰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운좋게 스쿠카쟈 스킬카드가 드랍되거나, 아니면 하위 페르소나들을 모아서 잇폰다타라를 합성시키면서 스쿠카쟈 스킬을 계승시키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할 텐데, 이미 거기까지 진행한 상태에서 주력으로 쓰는 페르소나들을 버리고 오직 이 퀘스트를 위해 최초 던전인 유키코 성으로 돌아가 최하위 페르소나들을 수집하며 시행착오를 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의 상시적으로 10~11체의 페르소나를 스킬과 속성별로 쓰던 상황에 뭐 하나 빼는 순간 자칫하면 좃망이니까.

고전게임에서 외부 공략정보가 없으면 플레이하기 힘들다라면 이해할 수 있다. 정말 그런 힌트나 추가정보를 게임 내에서 제공할 용량의 한계가 있었던 시절인 만큼 게임에 동봉된 매뉴얼이나 외부 공략정보에 의존할 걸 전제할 수도 있고, 아니면 유저간의 정보교류가 전제되어 만들어지는 포켓몬이나 일부 온라인 게임에서는 충분히 그러려니 할 수 있는 건데, 2010년대 싱글플레이어 게임이 외부정보를 찾아보며 플레이하길 요구한다면 내겐 감점요인이다. 특히 P4G는 플랫폼이 비타, 즉 휴대용이다. 밖에 들고 나가서 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구글링을 하라고?

그 외에 정말 공략을 뒤지고 싶은 욕망이 치솟은 파트들이 있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단서를 찾는 부분. 칸지에 대해서, 리세에 대해서, 미츠오에 대해서... 정보가 더 필요하다면서 마을의 모든 NPC와 대화를 하고, 개중에는 요일에 따라 등장하지 않는 NPC들까지 겹치며 게임 내 시간으로 3-4일가량 뺑이를 치면서 던전을 간신히 해금시킬 수 있었는데, 특히 이 요일 때문에 최소 2일 이상 걸리는 탐문들이 문제다. 모든 NPC를 전부 싸그리 확인하기 전까지는 오늘은 더 이상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는 걸 알 방법이 없다. 탐문이 시작되면 동료들도 NPC로 곳곳에 깔리는데, 대체로 도움이 안 되는 건 물론이고 얘들을 놔두고 그냥 집에 간 뒤 다음날 재개해야 하는 건 좀 심하게 비직관적이지 않아? 결국 짜증나서 구글했다.



결국 구글을 동원해야 했던 건 리세 파트. 이 시점에서 □버튼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마을이나 학교에서 □버튼을 누르면 굳이 맵을 전부 가로지를 필요 없이 주변 맵으로 이동이 가능해진다. 교실 밖으로 나와 교사 2층에서 □를 사용하면 교사 1층/별관/옥상/학교 밖 등의 선택지가 나오는 것. 게임 초반에는 아예 이 버튼에 대해 설명해주며 제4의 벽을 깨는 NPC도 있다. 그런데 리세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 하는 장면에서는 별관 2층에 있는 리세 팬을 찾아내 말을 걸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야소가미 고교의 본관 3층과 별관 2층은 □버튼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맵이고, 직접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야 하는 것. 내 탐색이 게을렀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만, 난 이 □버튼으로 액세스할 수 없는 별관 2층 맵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다. 페르소나 4는 시나리오가 훌륭한 게임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다음 피해자가 발생했다, 좋아. 구출하러 가. 하지만 주인공 일행이 문을 열고 들이닥치면 아주 우연히 그 순간에 피해자가 피해자의 섀도우를 부인하는 발언을 하고, 보스가 출현한다. 일행이 도착하기까지 3일이 걸렸다고 하면, 그 3일동안 피해자는 섀도우랑 뭐 하고 있었던 걸까? 1주일이 걸렸다면?

실종, 탐색, "너는 내가 아냐!"라는 발언으로 섀도우 각성, 보스전, 그리고 그제서야 "응 너도 내 일부분이야"라면서 자신의 일부를 받아들였다! ...라는 패턴도 처음 몇 번이지, 원패턴 반복을 보다 보면 신선도가 떨어진다. 요스케, 치에, 유키코, 칸지, 리세, 쿠마, 나오토까지 총 7번. 페르소나 각성이 없는 미츠오도 섀도우를 부정하며 보스로 흑화하는 건 마찬가지고, 이 패턴이 깨지는 건 6번째 던전 보스인 나마타메까지 와야 하는데... 게임의 시작은 4월. 그리고 게임 내 시간으로 1년간 계속된다. 이 원패턴이 깨지는 나나코 유괴/제6던전 개방은 11월이다. 게임의 2/3 이상은 이 원패턴 전개가 이어진다는 이야기. 이걸 두고 스토리가 훌륭한 게임이라고는 도저히 부를 수 없다.



11월의 나나코 유괴사건을 기점으로 그 전까지 원패턴으로 정체되어 있던 스토리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쯤까지 오니 드디어 어드벤쳐 파트가 쫌 재미있어지기 시작한다. 역으로 말하면 그동안 진범의 뒤를 쫓으며 뒤치닥거리만 하다가 드디어 힌트다운 힌트를 얻고 진범을 추적하게 되는 셈인데, 여기서 네타바레는 하지 않겠다.

P4G는 스토리가 훌륭하다기보다는 각 씬들의 연출이 멋진 게임이라고 불러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던전 디자인, 섀도우, 대사 및 컷씬 곳곳에 간지 넘치는 연출들이 들어가 인상깊은 씬들을 만들어 내고, 그 점에 대해서는 불만의 요소가 일체 없다. 다만 그건 각 씬들을 독립적으로 나눠서 볼 때의 이야기고, 그걸 전부 합쳐서 전체 시나리오를 조망해 보면 단조로운 원패턴 구성으로 전체 게임의 2/3이 채워진 건 아쉽다. 어드벤쳐 파트의 일상생활 이벤트에 쓸 여력을 좀 더 본편을 강화하는 데 투자해 주는 쪽이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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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WeissBlut 2016/08/04 14:43 # 답글

    사실 취향 엄청나게 타는 게임이죠. 저는 좋아했지만 실제로 던전 파트와 어드벤처 파트가 완전히 따로논다는 점이나 프롤로그가 너무 길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그런데 어드벤처 파트, 특히 커뮤니티의 난이도가 낮아진건 이거 주로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의 요구를 받아들인거라 (페르소나 3부터 시작해서 P3 FES, P4, P4G로 오면서 뒤로갈수록 올커뮤의 난이도가 단계적으로 낮아지죠) 그냥 팬층이 그렇다고 생각하셔야.

    시나리오에 관해서는 저도 P4는 시나리오 자체보다는 이벤트 연출이 좋은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춘물 냄새가 나는 이벤트들이 넘쳐나서 그런 면에서 평이 좋죠.

    그리고 특정 스킬을 가진 페르소나를 요구하는 퀘스트는 저는 꽤 담담하게 받아들였는데 (왜냐면 게임 자체가 페르소나 합성으로 특정 스킬을 계승시키고 그런식으로 원하는 스킬을 가진 페르소나를 만드는게 중요한 게임이라서) 이런 시각도 있겠구나 하고 느끼게 되네요. 확실히 다시 생각해보면 불친절하다고 느낄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gggo 2017/04/26 03:01 # 삭제 답글

    지금 중반 진행중인데 글 읽으면서 사이다 입니다. 어쩜 내 생각을 똑같이 쓰셨나. 이공계 이심이 분명합니다. 구구절절 밑줄 처가며 읽습니다. 비타 게임을 구글링하며 해야 하느니, 탐색 몇일.... 너무 진화해버린 격겜 같은 느낌. 초공감합니다.
  • Катюша 2017/04/28 11:14 #

    전 문돌이입니다!orz 이제와서 읽어보면 너무 까칠하게 썼나 싶은 생각도 드는데, 공감해주시는 분이 있다니 안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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