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레드・블루 현실도피


ポケットモンスター 赤・緑 / Pokémon Red & Blue (1996 GB)

본래 95년 발매예정이던 적・록은 96년에 발매되고, 98년에 해외판이 레드・블루라는 이름으로 발매된다. 근데 햇갈리게도 같은 96년에 일본에서 청 버전이 따로 한정발매되고, 99년에 일반발매됨에 따라 이름에서 혼선이 생겼는데, 해외판의 레드・블루는 일본판 청 버전을 베이스로, 적・록의 포켓몬 테이블을 덮어씌운 마이너 체인지 버전이다. 아마 그래서 저작권 로고가 95, 96, 98인 거겠지.

크리스탈을 끝내고, 이걸로 3세대로 바로 넘어갈까도 생각했지만... 포켓몬은 파티 편성의 자유도가 핵심인 게임이니까, 슬슬 손에 익숙해지기도 한 김에 좀 다른, 예전에 써본 적이 없는 포켓몬들을 중심으로 플레이해보고 싶어졌다. 시바리라고 하기에는 좀 널럴하지만, 일단 전당입성한 포켓몬은 다시 쓰지 않는다는 제한으로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3배속 터보.


푸크린, 시라소몬, 피죤투, 아쿠스타, 닥트리오, 파이어

일단 레드. 스타팅 포켓몬은 파이리. 하지만 피카츄 버전에서 이미 전당입성했기 때문에 구구와 꼬렛을 생포한 직후 파이리를 PC에 쳐박았다. 하지만 파이리를 쓰기로 하더라도 어차피 처음 두 체육관 관장인 웅과 이슬을 상대로 파이리는 상성불리기 때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스타팅 포켓몬 밸런스 이야기를 좀 하자면, 최초 두 관장인 웅(지면/바위)과 이슬(물)을 상대할 때

- 파이리(불속성)는 웅, 이슬 양쪽에 불리
- 꼬부기(물속성)는 웅에게 유리, 이슬과는 동속성
- 이상해씨(풀속성)는 웅, 이슬 양쪽에 유리
- 피카츄(전기속성)는 웅에게 불리, 이슬에 유리

세 포켓몬 모두 최종적으로는 각 속성의 강자가 되지만 극초반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파이리가 하드모드 취급받는 것도 납득할 만 하다. 이슬까지 넘고 중반으로 들어가면 야생에서 입수할 수 있는 포켓몬의 종류도 늘어나고 레벨도 올라가 있기 때문에 난이도가 평준화되지만 초반이 이모양이어서야.

물론 스타팅 포켓몬 하나만 데리고 싸우고 다닐 것도 아니고, 파이리를 골랐다면 웅을 넘어서기 위해 구구를 원탑으로 육성하던가, 캐터피를 잡아 버터플로 진화시키면 된다. 버터플은 벌레속성이지만 정작 벌레속성 기술을 배우는 게 아니라 사이킥 속성을 습득하는 만큼 웅의 롱스톤을 쉽게 잡을 수 있는데, 이미 버터플도 사용했기 때문에 구구를 사용했다. 롱스톤의 기술 '참기'는 2턴간 공격을 하지 않고 버티다가 그동안 받은 데미지를 2배로 되돌려주는 기술인데, 즉 그 사이에 데미지를 입히지 않고 모래뿌리기로 상대 명중률만 계속 떨어트리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올미스를 내는 꼴이 된다.

그 다음의 문제는 이슬. 이슬의 레벨21 아쿠스타의 거품광선은 역상성이 아니더라도 잘못 맞으면 웬만한 포켓몬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괴물이라 고민하다가, 우연히 달맞이산 앞에서 푸린을 발견했다. 아- 푸린이 여기서 나오는구나. 달맞이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월석과 기술머신01을 사용해 푸크린으로 진화시키고 메가톤펀치를 학습시켰다. 별가사리는 피죤으로 잡고, 아쿠스타가 등장하면 일단 모래뿌리기로 명중률을 떨군 뒤 푸크린으로 교체하는 전략. 피죤은 레벨 22에서 아쿠스타의 거품광선을 최대 1번까지는 버틸 수 있었고, 거품광선 외의 기술을 쓴다면 더 바랄 게 없다. 피죤이 쓰러지면 푸크린으로 교체, 노래하기로 잠재운 뒤 메가톤펀치로 때린다. 3회에 걸친 시도 끝에 성공.

다만 여기서부터 푸크린무쌍이 시작되었다. 이놈이 배우지 못하는 기술이 뭐지? 냉동빔, 10만볼트, 누르기, 메가톤펀치. (나중에 들으니 1세대에서는 꼬랫도 10만볼트를 배울 수 있다고...) 방어스탯이 특별히 높은 건 아니지만 대신 동레벨 다른 포켓몬들의 2배를 넘는 HP, 거기에 온갖 속성의 기술을 기술머신으로 배우는데다 SPECIAL 스탯도 제법 높아 자속성이 아니라도 특수공격의 데미지가 상당히 높다. 자체 속성은 거기에 노멀이라 격투타입이라도 나오지 않는 한 상성불리도 발생하지 않는다. 푸린만이 아니라 피피나 럭키였어도 가능했을 테고, 태초마을-홍련마을 구간에서 무심코 낚시를 하다가 별가사리를 발견하고, 아쿠스타를 쓰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레벨링을 하느라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 푸크린 원탑을 철저히 밀었다면 플레이타임 20시간 내에서 끊겼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뭔가 만족스럽지 않다. 근 20년 전의 중딩이었다면 다 쓸어버리며 존나 좋아했겠지만 어설프게 짜여진 게임 디자인을 남용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말이지.. 먼 옛날 파이널 판타지 6을 하다가 숨겨진 아이템, 기술 등을 손에 넣으며 게임이 역으로 재미없어져 때려쳤던 때와 비슷한 느낌? (FF6은 그래서 미클리어 상태다. 거의 다 잊어버렸기 때문에 슬슬 재도전해도 될 것 같지만... 내가 공략을 옆에 놓고 플레이하길 싫어하게 된 것도 아마 그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썬더, 루주라, 거북왕, 고지, 우츠보트, 마임맨

레드의 참사를 뒤로 하고 블루로 다시 시작하면서는, 원탑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절해 가며 플레이했다. 내가 아직 초딩이었다면 아무런 불만이 없었겠지만, 다양한 타입이 맞물리는 가위바위보 관계에서 교체해 가며 싸우는 게 묘미인 포켓몬에서 이런 원탑 스위퍼가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그냥 싫었다. 그리고 그런 김에 그동안 써본 적 없는 포켓몬을 기용하다 보니 상기의 멤버가 이루어졌다. 레벨링도 최대한 억제했다.

마임맨과 루주라는 게임 내에서 NPC와의 교환으로만 입수가 가능하고, Marcel과 Lola라는 이름을 바꿀 수 없다. 난 포켓몬에 별명 붙이는 게 귀찮기도 하고, 포켓몬 명칭과 별명을 2중으로 기억하기 싫어서 일괄적으로 안 붙이고, 실제로 거의 붙여본 적이 없다. 1세대에서는 특히 PC에 집어넣은 포켓몬이 별명으로만 표시되기 때문에 이것저것 다 별명 붙이다가는 어느게 어느놈인지 내가 잊어버리는 것도 있고.

다른 트레이너로부터 얻은 포켓몬의 이름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데, 사소한 것 같지만 사실 예나 지금이나 포켓몬의 교환에 관심이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통신을 통해 타른 사람들과 포켓몬 교환이 가능하다고? 도감을 위해 어떤 포켓몬을 교환으로 얻는다고 치자. 근데 그 포켓몬의 별명이 병신같거나, 심할 경우 비속어라면? 포켓몬에 애칭을 붙일 수 있는 기능이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물론 많겠지만, 남이 제멋대로 붙인 이름을 내 화면에서 봐야 한다는 점에서 이미 내겐 포켓몬 교환이 전혀 매력적인 요소로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이런데서 결벽증 느끼는 내 인간성 문제인 건 나도 잘 안다.

본래 게임 이야기로 돌아와서, 고작 2주전에 피카츄 버전을 할 때 나는 부활약 20여개 이상과 그 배 이상의 포션을 들이부어가면서 사천왕과 라이벌을 클리어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레드, 블루 버전을 2, 3주차라고 하면 아무런 전승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그 사이 쥐꼬리만큼 올라갔다는 것만으로 체감상 난이도가 폭락한 것. 즉 조금만 연구하면 간단히 깨지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허술하게 만들어졌다는 인상이 남아 뒤끝이 좋지만은 않다. 아니, 사실 45~50레벨대면 충분히 사천왕과 라이벌을 유린할 수 있는 게임에서 만랩이 100이라는 것 자체가 스토리 모드는 장식이고 플레이어간 대전이 메인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3세대부터는 시스템적으로도 크게 변했다고 하고, 1~2세대의 포켓몬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고 하니 프레쉬하게 시작할 수 있을 것도 같지만, 일단 한동안 손을 좀 떼고 이것저것 잊어버리면서 늅늅해져야 할 것 같다.

덧글

  • ㅇㅇ 2016/09/05 13:03 # 삭제 답글

    3세대때는 파이리가 메탈크로를 배워서 웅이따위는 썰고 다녔죠 물론 이슬이한테는..
  • Катюша 2016/09/05 14:33 #

    오오, 그런 상향(?)이 이루어졌군요.
  • reality 2016/09/05 13:23 # 삭제 답글

    푸크린 픽시처럼 노멀타입 포켓몬들이 예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불 얼음 전기 그외~ 의 기술머신을 많이 익힐 수 있는 기술폭 넓은 포켓몬이 된 것은 1세대부터의 전통이죠.

    이젠 페어리 타입 포켓몬이 되어버렸지만요. ㅎㅎ
  • Катюша 2016/09/05 14:35 #

    저, 전통(...) 페어리 타입이라, 찾아보니 6세대인 걸 보니 앞으로 갈 길이 멀군요
  • Admiral 2016/09/05 17:14 # 삭제 답글

    2세대에서 끔찍한 난이도라고 평가 받는 치코리타지만,
    이도 원탑 스위퍼가 아니라 골고루 키운다면 (그 예로 첫번째 새포켓몬 관장 전에 모다피-롱스톤 교환) 그렇게 깨기 어려운 것도 없고 말입죠. 이게 다 1세대에서 초반 짐 구성에 이상해씨가 깡패였던 탓. (...)

    현 페어리 타입인 애들, 특히 럭키는 강하다고 평가받고 있죠...
    ...랄까, 초딩 때는 그냥 원탑으로 강한 게 최고지만. (...)
  • Катюша 2016/09/05 22:30 #

    확실히 이상해씨가 너무 강력한 것도...
    럭키는 운좋게 사파리에서 한마리 잡았는데, HP 보고 뿜었습니다. 이거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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