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성 드라큘라 X 피의 론도 현실도피

Night. Blood. Dracula. Lollipop.

悪魔城ドラキュラX 血の輪廻 (1993)

아, 악마성. 난 악마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딱히 시리즈 팬인 것도 아니다. (근데 내가 팬이라고 자칭하는 시리즈가 있긴 한가) 그나마 약간이나마 손대본 게임이라면 SFC판 악마성 드라큘라와 PS용 월하의 야상곡, 그리고 PSP로 리메이크된 이 게임, 피의 론도 리메이크 정도지만 어느 것 하나 끝까지 해본 것도 아니다. 어째선지 악마성 이야기를 하는 레트로 리뷰어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자기가 팬이라고 열심히 어필을 하는 것 같은데, 괜히 구라치며 그런 어필을 할 생각은 없다. 

게임을 시작하면 독일어로 된 나레이션과 오프닝 컷씬이 나오는데,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스틸 이미지긴 하지만 괜히 애니메이션을 쳐넣느라 본 게임에 들어갈 예산과 기한을 잡아먹느니 이렇게 처리하는 게 나을 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오프닝을 제외하면 다른 스토리 컷씬들은 일본어로 녹음되어 있는데, 그냥 둘 중 하나로 통일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독일어 성우는 네이티브로 보이는데, 이 게임의 악마성이 유럽의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본래 드라큘라는 루마니아고, 'Belmont'이나 'Renard'는 프랑스식 성인데 나레이션은 독일어. 프랑스계 조상을 가진 독일물 먹은 루마니아의 귀족이거나 그런 거야? 혼란스럽다.

오프닝 시퀀스가 지나고 나면 짧은 프롤로그 스테이지를 지나 메인 게임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리히터 벨몬트만을 조작할 수 있지만, 스테이지 2의 거대 산양같은 것이 추적해오는 씬에서 열쇠를 얻어 마리아를 구출하면 마리아로 플레이할 수 있다. 스토리상 드라큘라에게 납치되어 구출해야 하는 여자는 4명인데, 다른 3명은 되면 구하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넘기더라도 마리아는 반드기 구하는 쪽이 게임 클리어에 도움이 된다. 플레이어블 캐릭터로서 리히터와 마리아는 플레이 스타일이 판이하게 다른데, 매뉴얼도 아니고 자세한 커맨드 목록같은 건 생략하겠지만 전체적으로는 마리아로 플레이하는 쪽이 더 쉽기 때문이다.

리히터와 달리 마리아는 2단점프가 가능해 플랫포밍이 요구되는 부분을 넘기기 쉽고, 통상공격도 비둘기를 이용한 2연격이 가능해 더 빨리 적을 쓰러트릴 수 있다. 굳이 단점이라면 유리몸이라 맞을 때마다 HP가 더 빨리 줄어들고, 패턴 잘못 들어가 연속으로 맞기 시작하면 금방 게임오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정도인데, 어차피 이 게임은 맞아가면서 싸우는 게 아니라 패턴을 파악하고 피해다니며 싸우는 게임이기 때문에 그리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기본 조작은 II 버튼이 공격, I 버튼으로 점프, ↑ + II 콤보로 보조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슈퍼패미컴에서 보조무기가 R에 매핑되고, 덕분에 8방향 채찍질이 가능했던 것에 비해 패미컴 컨트롤로 회귀한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한 리뷰들이 많은데, PCE 컨트롤러에 숄더버튼은 고사하고 기본 버튼도 2개밖에 없다는 걸 생각하면 어쩔 수 없지 않나. 셀렉트를 누르면 대량의 하트를 사용해 '아이템 크래시'라는 특수공격을 사용할 수 있다. 그 외에 리히터와 마리아는 각각 고유 기술들을 갖고 있고, 다른 커맨드를 입력하는 걸로 실행시킬 수 있는데 개중엔 좀 까다로운 것들도 있다. ↓, ↑, ↓→ + I ? 전 못하겠습니다.

레벨 디자인상 가장 큰 특징은 비선형성. 2면에서의 진행에 따라 아예 별도의 스테이지 루트가 열리는 건 물론이고, 같은 스테이지 내에서도 어떤 루트로 진행하느냐에 따라 도중에 상대하는 적들과 보스가 달라진다. 초견에서라면 대부분 정규 루트로 빠지게 될 텐데, 우라 루트는 스테이지 넘버에 어포스트로피(')가 붙으며 전체적으로 정규 루트보다 어렵다. 정규 루트를 하다가 어딘가 점프를 실패해 다른 루트로 빠지기도 하고, 우라 루트로 들어갔다가 정규 루트로 되돌아오기도 하게 되는데, 덕분에 낙사구간은 줄었지만 그래도 어디서는 떨어지면 죽고, 어디서는 분기해버리는 식이라 일관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일방통행 구성에서 메트로이드배니아 스타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게임이라는 평가가 납득이 간다. 지금 보자면 메트로이드배니아를 몇 개로 잘라서 스테이지로 구분해 놓은 느낌?

플랫폼 점프는 리히터로 플레이한다면 까다롭지만 더블점프가 가능한 마리아로 진행한다면 오히려 너무 쉬워지는 느낌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너무 마리아가 우대받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 로리콘 자식들. 스테이지에 따라서 어디는 리히터, 어디는 마리아로 플레이하는 게 유리하다거나 했다면 어땠을까.

레트로 게임답게 죽어가면서 배우는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건 사실이지만 클리어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난이도 자체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죽으면 도중의 체크포인트부터 다시 시작, 보스전에서 죽었다면 보스 직전 에리어에서 시작해 하트를 약간 보충하고 재도전할 수 있으며 완전히 게임오버되더라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니라 스테이지 셀렉트로 도중부터 재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친절하다. 대부분의 보스들도 몇 번 죽어보면 그 공격 패턴이 일정하기 때문에 간파가 그리 어렵지 않다. 마지막 보스인 드라큘라마저도. 사실 드라큘라보다 그 직전인 6면의 보스러시가 더 까다롭지만 그 대신 6면은 도중이 짧고 단순하기 때문에 그런 밸런스도 잘 맞춰져 있다.

그런데 위에서 드라큘라도 그리 어렵지 않다고 했지만, 사실 난 리히터로는 도저히 드라큘라를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다. 양덕들 중에서는 마리아의 강력함이 캐슬배니아를 핑크 드레스 입은 12살짜리로 플레이하는 굴욕에 대한 보상이고, 진짜 하드코어 캐슬배니아 팬이라면 리히터로 해야 한다는 놈들도 있지만 전 그냥 철면피 로리콘으로 살겠습니다. 같은 스테이지를 리히터와 마리아로 번갈아가며 도전해 보다 보면 결국 계속 마리아를 구하게 된다.

사실 납치된 약한 여자를 구출하는 용감하고 강한 남자, damsel in distress 클리셰는 아니타 사키지안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지긋지긋한 구성이고, (난 그녀의 주장에 75%쯤 동의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 르나르는 damsel in distress에서 자립적인 히로인으로 변모하는 희귀한, 그리고 재미있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초보자들의 손에서는 결국 드라큘라를 쓰러트리는 것이 리히터가 아니라 마리아일 가능성이 높고, 고수라도 100% 컴플리션을 위해서는 마리아를 동원하지 않으면 리히터로는 접근할 수 없는 에리어도 있으니까.

난 그런 의미에서 평범한 남성 영웅 A인 리히터보다 마리아를 더 높게 평가하고 싶다. 음, 그렇다고 물론 코나미가 그런 의도를 갖고 마리아를 넣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야. 일본애들은 페도필리아가 종특이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 뿐이겠지.


이 게임은 PSP로 '악마성 드라큘라 X 크로니클'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었는데, 고백하자면 츠미게로 있다가 한참 예전에 중고로 팔아버렸다. 그래픽을 업데이트하겠다고 3D 렌더링된 캐릭터로 바꾼 건 좋은데, 이게 PSP 최신작 수준으로 화려한 그래픽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90년대 초반 오리지널의 분위기를 간직한 것도 아닌 애매한 수준의 리메이크인데다 색감도 전체적으로 칙칙해서 매력을 느끼기 힘들었다. 곳곳에 튀어나와 게임의 흐름을 방해하는 컷씬과 대사들, 그리고 2D 게임플레이와 3D 캐릭터 사이에 느껴지는 미묘한 괴리감. 보이스를 지원하면서도 (적어도 해외판은) 듣다가 PSP를 집어던지고 싶어질 만큼의 발연기를 보여주는 덕분에 이미지가 더 나빴을 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픽의 기술적인 수준은 보통 개의치 않는 편이다. 폴리곤이 얼마나 쳐들어갔고, 프레임 레이트가 30fps인지 60fps인지도 일정하기만 하면 문제시 하지 않으며, 인터레이싱을 쓰든 말든 해상도가 780이든 1080이든 개의치 않지만 색감이 칙칙하고 우중충한 그래픽은 참기 어렵다. 참고 했으면 PCE 오리지널 피의 론도 이식판과 PSX용 월하를 해금할 수 있었겠지만, 이걸 참고 해야 하나 싶었던 것. 거기에 재디자인된 마리아의 3D 모델은 원본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PCE판은 디테일한 백그라운드와 자연스런 캐릭터 애니메이션, 그리고 일견 음울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칙칙하지 않고 다양한 컬러를 사용한 덕분에 눈이 질리진 않는다. 리메이크에서 느껴진 싸구려 3D 느낌이 아니라 정성들여 도트를 찍은 스프라이트 애니메이션과 배경을 보며 이쪽이 더 시각적으로 만족스럽다고 하면 내가 늙어서 그런가. 리메이크에 대해 너무 평이 가혹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꽤 오래전 기억이라 게임을 다시 돌려보면 그것도 그것대로 플레이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그거 비교하자고 PSP판을 새로 지르기도 그렇지.

次回:
Now to let everything rest in peace...

덧글

  • 참새고기 2017/09/08 13:26 # 삭제 답글

    PSP 판은 완전 쓰레기 그 자체 입니다. 왠지 움직임도 맘에 안들고 마리아를 완전 남자 아이로 만들어 놓은 것도 그렇고. 게임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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