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기괴계 현실도피

And a shrine maiden to let everything rest.

奇々怪界 (1990 PCE)

원작은 1986년 아케이드, 1990년 PC엔진 이식. 다양한 이식판들이 존재하는 중에서도 아케이드에 가까운 이식이라고 한다. 몇 가지 차이가 보이긴 하지만 충분히 가깝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할로윈 스페셜로 한달간 잡귀와 악마들과 싸우고 다녔으니 무녀를 불러 살풀이를 할 시간, 이걸로 할로윈 위크는 끝이다. (벌써 어제로 끝났다고? 아니, 현지시각으로 31일입니다.)

땡중들에게 납치당한 칠복신을 구하고, 칠복신들의 배까지 찾아주는 무녀 사요의 이야기. 오버헤드 시점 슈팅/런앤건으로, 비슷한 게임을 꼽아보자면 이카리, 코만도, 프론트라인 같은 것들을 들 수 있겠지만 허구한날 전쟁터의 땀내나는 아저씨들이 아니라 요괴들을 무찌르는 미소녀 무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여명기 씹덕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작품. 그러니까, 일본에서 뭐든 미소녀 게임으로 만들어 십덕십덕해지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닌 거야. 무녀 슈팅이라는 점에서는 기기괴계의 사요가 이후 하쿠레이 레이무의 대선배격이라고 해도 될 듯.

내용은 간단하다. 7개의 스테이지를 돌며 요괴와 땡중들을 때려잡으며 각 스테이지의 열쇠를 찾고, 보스와 일전을 벌인 뒤 다음 지역으로 향하면 된다. 보스를 쓰러트릴 때마다 칠복신이 하나씩 풀려나는데, 열쇠를 얻지 않으면 보스전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지만 열쇠를 찾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때로 분기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같은 길로 이어진다.

7면까지 클리어하고 나면 엑스트라로 8면이 열린다. 7복신들이 타고다니는 배를 찾아달라는 것 같은데, 처음에는 기존 스테이지들처럼 닥치고 돌파를 해 보려 해지만 길이 막혀서 진행되지 않는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헤메다가 우연히 (아마도) 지장보살 동상 중 하나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발견, 이걸 모아야 하나 싶어 필드를 뒤지다가 3개째 두루마리를 얻자 필드의 적들이 일제히 사라지며 막혔던 길이 열리고, 들어가면 엔딩을 볼 수 있다. 이후 검색해 보니 8면의 양쪽 끝이 위아래로 막혀 있던 PC엔진과 달리 아케이드판에서는 이 스테이지가 무한루프 구성이라고. 2주차는 없다.


조작은 심플. II 버튼으로 샷, I 버튼으로 고헤이를 휘두른다. 고헤이를 휘두르는 공격은 리치가 짧은 근거리용인 만큼 정말 급한 상황이 아닌 이상 보통은 샷에 의존하게 되고, 게임 내내 이걸 연타하고 있기에는 엄지손가락이 피곤하니 터보로 세팅하자. 다만 이렇게 하면 샷의 SE가 무한반복되며 귀가 살짝 괴로워진다. BGM도 1소절짜리 똑같은 곡이 게임 내내 무한루프되기 때문에 오래 하다 보면 청각테러로 머리가 아파진다.

거기에 배경도 대부분 스테이지가 비슷비슷할 뿐더러, 회색이 너무 많아 눈에 단조롭다. 그래픽의 기술적인 수준을 말하는 게 아니라, 색감과 채색의 문제. 물론 원작이 86년 아케이드라는 걸 생각하면 눈감아 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 굳이 90년에 PCE로 이식할 거라면 좀 더 컬러풀하게 채색을 해 줬어도 좋지 않았을까. 사실 아케이드 원작도 색감이 화사한 게임은 아니기 때문에 굳이 이식의 문제는 아니다만.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잔기는 3개. 크레딧도 3개. 1히트 즉사의 표준적인 아케이드 이식작 구성을 갖고 있다. 도중에 뭔가 하다 보니 잔기를 얻기도 했지만 중반 이후로 가면 완전 복마전이 펼쳐지고, 보스전도 까다로워지는 만큼 연습이 필요한데, 내가 저능한건진 모르겠지만 자코나 보스나 움직임이 도저히 패턴화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저 기합으로 어찌 해 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그런데 화면이 탄으로 번잡해지는 와중에도 차분히 피하면서 자코를 정리해 나가다 보면 해결되긴 하는 만큼, 중요한 건 인내심. 

이 게임의 재미있는 부분은 이미 지나온 에리어로 다시 되돌아갈 지 말지를 고민해야 하는 부분. 보스전에서 죽었다가 계속할 경우 그동안 얻은 파워업을 당연히 전부 상실한 상태에서 리스폰된다. 파워업 아이템인 부적을 모으지 않으면 사요의 공격 사거리가 짧기 때문에 그만큼 보스에 가깝게 접근하느라 리스크가 늘어나게 되고, 그렇다고 부적을 모으러 기존 에리어로 되돌아가려고 하면 당연히 적들도 리스폰되기 때문에 괜히 또 죽게 되기도 한다.

필드에서 주의해야 할 부분이라면 적들이 몰려나온다 해서 이걸 상대하자고 후퇴했다가, 아까 있던 위치로 돌아오자마자 그놈들이 리스폰해 몰려오는 무한루프에 빠지는 정도. 차분히 일보이보 전진해 나가다 보면 어느샌가 조작이 손에 익게 된다. 다만 보스전에서는 약간 히트판정이 애매한데, 정면에서 쏠 때는 어쨌건 보스를 향해서 쏘면 대체로 맞는데, 측면에서 쏘려고 하면 탄이 보스를 그대로 통과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건 게임의 시점의 문제. 화면상에선 보스의 옆에서 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요가 몇 마스 뒤에 위치해 있거나 해서 허공을 향해 쏘는 거라고 하면 이해할 수 있다. ...만, 이건 보스를 향해 쏠 때 그렇다는 이야기고, 화면상에서 보스의 어깨 위 빈 공간처럼 보이는 곳에 사요가 들어가도 충돌한 걸로 판정되는 듯 1기 소모된다. 옛날 게임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긴 하지만 치사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근데, 이렇게 불만을 늘어놓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사실 즐거운 게임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라운드에서 끝판왕을 깨고 말겠다는 필사의 각오따위 없이 가볍게 스타트해서 죽을 때까지 적당히 한다고 생각하면 2016년 기준에서도 어지간한 모바일 캐쥬얼게임보다 훨씬 낫거든. 스토리가 복잡한 것도 아니고, 패턴화와 암기를 요구하지도 않는, 단순하지만 직관적인 게임플레이는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고 내려놓기 힘든 법이잖아? 반대로 이 망할 게임을 반드시 깨겠다고 덤빈다면 가면 갈 수록 환장할 난이도를 보여준다. 나로선 세이브 치트 없이 자력으로 이 게임을 깰 자신은 도저히 들지 않는다. 10차례 이상 도전했지만 나로선 3~4면 정도가 한계. 

우라와자가 존재한다. 타이틀 화면에서 I 버튼을 누른 채 ↑, ←, ↓, →, ↑, →, ↓, ← 를 입력하고, 셀렉트를 누른 채로 II 버튼을 10회 누르면 잔기 9로 시작한다. 복잡하기도 하지. 게임오버되었을 경우 타이틀 화면에서 ↑ + RUN 을 누르면 마지막 파워업 사태를 스테이지 1부터 갖고 시작할 수 있는데, 피탄 - 파워부족 - 다시 피탄의 데스 스파이럴에 빠진 상태에서는 딱히 도움이 되지 않지만 마지막 잔기로 제법 많이 진행한 상태에서라면.

여담. 아케이드판은 처음에 수출판에서 Knight Boy 로 개명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왜색이 좀 심하게 강한 작품들은 아예 해외에 못 나가거나, 나가더라도 마개조되어 나가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상한 건 아니다. 란마 격투게임이 해외로 나가면서 SF틱한 스프라이트로 전부 교체된다거나 하기도 했으니까. SFC 이후의 이식판은 Pocky & Rocky 라는 이름으로 발매되기도 하지만 PCE는 일본한정이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Kiki Kaikai로 통한다. 시리즈 전체는 Pocky & Rocky 라는 제목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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